
이제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키홀릭 블로그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블로그를 쉬는 동안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이 블로그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2015년부터 6년간 이 포스팅의 90% 이상을 차지한 빅3, 그 다음 테니스를 어떻게 그려야 할까.
결론은 좀 더 테니스의 다양한 깊이 있는 스토리를 소개하자는 것입니다. 남자 테니스의 일부 선수에 그치지 않고 폭넓은 테니스의 다양한 측면을 조명합니다. 여기에는 그동안 비교적 소홀했던 국내 테니스 관련 이야기도 담을 생각입니다.
오늘 포스팅은 저와 조코비치의 이야기인데요.
2021년 11월 21일을 끝으로 kbsn 테니스 중계방송 해설 업무를 모두 마쳤습니다. 2019년부터 3년간 계약기간이 종료됨에 따라 ATP투어 중계방송은 이제 kbsn이 아닌 다른 방송사에서 내년부터 중계될 예정입니다. 참고로 4대 메이저 대회는 tvn과 스포티비가 나누어 중계한다고 합니다. 호주오픈과 프랑스오픈을 tvn이, 그리고 윔블던과 US오픈은 스포티비가 담당합니다. ATP 투어도 국내 방송국이 중계를 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습니다.
저의 마지막 ATP 투어 중계 방송은 조코비치와 즈베레프의 투어 파이널 준결승이었습니다. 명승부였어요 풀세트 접전 끝에 즈베레프가 조코비치를 물리치고 결승에 올랐어요
그 순간 약간 만감이 교차했어요 제가 처음 ATP 중계방송 해설을 맡았던 2016년 3월 마이애미 마스터스 결승전이 떠올랐어요. 그때도 역시 조코비치가 지금처럼 무적 모드를 유지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른바 노 박스슬램을 달성한 그해였습니다. 그때 니시고리를 결승에서 크게 따돌리고 마스터스시리즈 우승컵을 안은 조코비치의 모습이 2021년까지 계속될 줄은 몰랐습니다.
조코비치가 승자 즈베레프를 끌어안고 진심으로 축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제 노파에게는 위대한 승자의 여유가 느껴져요. 현대 테니스의 모든 기록을 갈아 치운 주인공답게 이젠 서서히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줄 수 있는 여유입니다.
이건 조코비치보다 먼저 테니스 황제 칭호를 받은 페데러와 나달이 부여받지 못한 특권이라고 생각해요. 페데러는 항상 자신을 턱밑까지 쫓아오던 나달과 조코비치를 뿌리치느라 30대 중반이 훨씬 넘도록 여유를 갖지 못했어요. 나달 역시 메이저 20승에 먼저 선착한 5년 선배 페데러를 뒤쫓느라 항상 발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뛰어다녔어요.
승자의 여유, 충분히 10년 차 뛰어난 후배들인 메드베데프, 즈베레프, 치치파스가 아무리 우승을 많이 하고 또 뼈아픈 패배를 안긴다 해도 조코비치는 그들을 축복하고 포용할 수 있습니다. 페데러와 나달 사이에서 세 사람의 설움을 오랫동안 받아온 조코비치에게 테니스 신이 내린 선물, 바로 챔피언의 여유라고 생각하고 싶어요.

마지막 중계를 마치고…kbs n 유진희 pd (가운데)랑 서준일 아나랑 같이 한 컷! 유진희 pd는 이제 테니스 전문가가 됐어요 돌이켜 보면, 제가 중계한 대부분의 ATP 투어 대회는 마스터스 시리즈였고, 그 마스터스 시리즈의 주인공은 단연 조코비치였습니다. 연초에 시작하는 하드 코트 시즌부터 유럽의 뜨거운 햇살 속에서 열리는 클레이 시즌, 영국의 잔디와 북미의 하드 코트, 그리고 유럽의 실내 하드 코트까지 일년 내내 모든 마스터스급 대회에서 조코비치는 거의 예외 없이 4강에 올랐습니다. 이 때문에 보통 준결승부터 시작하는 마스터스 시리즈 중계방송 중 대부분이 조코비치의 경기가 포함됐습니다.
이런 점에서 조코비치는 뭐니 해도 테니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입니다. 그 위대한 역사의 순간을 실시간 중계로 함께할 수 있어서 무한한 영광이었습니다. 훗날 자신의 아이들에게 자신이 조코비치의 우승 순간을 중계 방송했다고 자랑할 수 있어요. 정말 가문의 영광입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선수 출신이 아니에요. 대학 동아리에서 테니스 라켓을 잡고, 이후 테니스를 좋아해 스포츠기자를 하면서도 테니스 경기를 빼놓지 않고 보는 마니아 수준이었을 뿐입니다. 과분하게 kbs 기자라는 타이틀에 보너스처럼 주어진 해설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열심히 노력해봤지만 역시 근본적인 한계는 있었어요. 중계를 하면 할수록 제 실력의 부족함을 느꼈어요. 이미 그 과중한 부담을 지게 되어 마음이 편해지기도 합니다.
제 테니스 해설은 여기서 마치지만 테니스는 계속 됩니다. 임규태 박용국 kbsn 해설위원은 물론 이형택 유진선 최천진 김영헌 성승리 등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테니스 전문가들은 4대 메이저 테니스대회와 ATP, WTA 투어 중계방송에서 계속 테니스팬 앞에 설 것입니다. 제발 작별의 전쟁이 벌어지는 무대에 국내 선수들이 더 많이 출전하는 모습이 계속됐으면 좋겠어요.
해설이라는 몸에 잘 맞지 않는 옷을 벗고 또 말과 글을 업으로 삼는 제 직업에 충실하는 시간입니다. 특히 지금의 ‘키키홀릭’을 만들어 주신 이 네이버 블로그는 제가 테니스 라켓을 놓지 않는 한 계속 분발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새로운 시대에 맞춰 유튜브 영상도 틈틈이 올리고 본업 기사도 열심히 써요. 블로그 친구들의 댓글은 예나 지금이나 저에게 가장 큰 힘이 됩니다. 새로운 키키홀릭 블로그 시즌2에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